
기승전결 글쓰기, 그 익숙한 낯섦에 대하여
어제 한 스타트업의 콘텐츠 기획 미팅에 참석했어요. 브랜드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하는 자리였죠. 화이트보드에는 키워드들이 가득했고, 테이블 위에는 경쟁사들의 콘텐츠 분석 자료가 펼쳐져 있었어요.
그때 한 팀원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기승전결에 맞춰서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순간 미팅룸이 조용해졌어요. 마치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진리를 마주한 것처럼요.
그 순간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어요. 지난 주에 본 한 음식점의 SNS 포스팅이었죠. 그날 아침에 일찍 나온 셰프가 시장에 들러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모습을 담은 짧은 영상이었어요. 특별한 메시지도, 완벽한 구성도 없었지만, 그 자체로 가장 진정성 있는 브랜드 스토리였거든요.
다시 미팅룸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는 조심스럽게 물었어요.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뭘까요? 기승전결을 맞추기 전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침묵이 이어졌다가, 한 명이 또 다른 질문을 던졌어요.
“그동안 우리가 너무 형식에 매여있었던 걸까요?”
그렇게 우리의 진짜 기획은 시작되었어요. ‘마케터의 문장력은 무엇일까?’ 완벽한 구조를 찾는 대신, 우리다운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이 말이죠.
형식의 틀을 깨다 발견한 것들
5년차 마케터로 일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때로는 완벽한 구조보다 불완전한 진정성이 더 큰 울림을 준다는 거예요.
얼마 전 진행했던 캠페인이 떠오르네요.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경쟁사들은 모두 정석적인 기승전결로 광고를 만들어냈거든요. 우리도 그래야 할까요?
회의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고민했던 기억이 나요. 화이트보드에는 수많은 아이디어가 적혔다가 지워졌어요. ‘도입부에서 임팩트 있게 시작해서… 중간에 갈등을 넣고… 마지막은 감동적으로…’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공식을 따르려 했죠.
그러다 문득 스마트폰을 열어 고객 리뷰들을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어요. 그때 발견한 거예요. 우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언어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매력적인지를.
결국 우리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고객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그대로 담아내기로 한 거예요. 어설프지만 진짜 같은, 불완전하지만 친근한 이야기를.
한 고객의 메시지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아침에 허둥지둥 준비하다가 이거 하나 발랐는데, 피부가 완전 촉촉해서 놀랐어요! 근데 세수할 때 정신없어서 뚜껑을 못 닫고 나왔네요 ㅠㅠ” 이런 솔직한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광고에 담았죠.
마케터가 바라보는 진짜 기승전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정형화된 구조는 없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공감을 얻었거든요.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너무 단순한 게 아닐까?’ ‘브랜드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될까?’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죠. 고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드디어 내 이야기 같은 광고를 보네요!”
“세상에나, 저도 똑같은 경험 있어요!”
“왜 이제야 이런 광고가 나왔죠?”
기승전결이란 결국 ‘흐름’이에요.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듯, 이야기도 그렇게 흘러가야 하는 거죠. 강제로 파이프를 설치해서 물길을 만드는 게 아니라, 물이 흐르고 싶은 대로 두는 거예요.
이 캠페인을 통해 깨달은 게 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완벽한 구조’란, 어쩌면 브랜드와 고객 사이의 벽을 쌓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요. 진짜 소통은 그 벽을 허물 때 시작되는 걸까요?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발견
최근 한 뷰티 브랜드의 SNS를 리뷰하면서 또 한 번 깨달았어요. 그들의 피드에는 정형화된 기승전결이 없었습니다. 대신 매일매일의 작은 이야기들이 이어져 있었죠.
수많은 화장품 브랜드가 ‘완벽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이 브랜드는 ‘불완전한 일상의 예쁨’을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더 강력한 브랜드 메시지가 되었죠.
한 포스팅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출근 준비에 늦어 허둥지둥 메이크업을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는데,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더라고요. 완벽한 메이크업 과정도, 그럴듯한 브랜드 메시지도 없었지만, 그날 하루 동안 수많은 공감 댓글이 달렸어요.
“저도 매일 아침 저래요 ㅠㅠ”
“와… 진짜 내 모습 보는 것 같아…”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기승전결은 어쩌면 브랜드와 고객 사이의 ‘거리’를 만드는 건 아닐까? 너무 완벽하게 다듬어진 이야기는 오히려 실제 삶과의 접점을 놓치게 만드는 게 아닐까?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세요
지금 이 순간, 어쩌면 당신도 ‘완벽한 글쓰기’의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잊지 마세요.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는 이미 자연스러운 흐름이 담겨 있다는 걸요.
얼마 전, 한 주니어 마케터가 저에게 물었어요. “선배님, 제 글이 너무 엉성한 것 같아요. 기승전결도 잘 안 맞고…” 저는 되려 물었죠. “당신의 글이 엉성하다고 느끼는 이유가 뭐예요?”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다른 사람들의 글처럼 깔끔하지 않아서요.”
바로 그거였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쓰려고 하니 오히려 글이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조언했어요. “오늘 하루 동안 친구한테 카톡 보내듯이 써보는 건 어때요? 기승전결 같은 건 잊어버리고,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보는 거예요.”
다음 날, 그가 들고 온 글은 달라져 있었어요. 여전히 완벽하진 않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생생했거든요. 읽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어떤 광고인은 이런 말을 했어요. “가장 좋은 광고는 마치 광고처럼 보이지 않는 광고다.” 저는 이렇게 덧붙이고 싶네요.
“가장 좋은 기승전결은 기승전결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결국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진심이니까요. 당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당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기승전결이 될 테니까요.